기후위기로 산업 생태계가 변한다[정삼기의 경영프리즘]

입력 2022-10-12 14:57   수정 2022-10-14 00:50

이 기사는 10월 12일 14:5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가을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따사한 햇살과 청명한 공기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자연으로 불러냅니다. 마스크의 답답함이 서서히 해소되면서 코로나 악몽도 걷히는 듯 보입니다. 그와 동시에 얼마 전의 비극도 잊혀지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십니까?

8월 초 서울엔 100여 년만의 폭우로 인명 피해가 컸습니다만, 신림동 반지하방 참사가 뉴스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9월 초에는 태풍 '힌남노'가 포항, 울산 등 동남부를 할퀴었습니다. 지하주차장에서 생사가 갈린 가족이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지난 여름의 기상이변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대서양 서쪽 미국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데스밸리에 1000년 만에 집중호우가 쏟아졌습니다. 대서양 건너편 유럽은 500백년 만의 가뭄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말랐습니다. 대륙 반대쪽 중국 남서부 지역은 1961년 이후 최악의 가뭄으로 수억 명의 주민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파키스탄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6월부터 시작된 몬순 우기로 국토의 3분의 1 이상이 물에 잠기고, 1600명이 목숨을 잃고, 인구의 10%인 3300만 명이 집을 잃었습니다.

이런 기상이변이 올해만 유별난 것처럼 보입니다만 1년 전도 비슷했습니다. 독일은 홍수로 초토화되었고, 핀란드 최북단은 30°C까지 치솟는 폭염이 이어졌습니다. 캐나다 서부는 폭염과 산불로 500여 명이 숨지고 작은 도시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미국 데스밸리는 54°C로 역대 최고 기온을 기록했습니다. 중국 정저우는 폭우로 도시 전체가 물에 잠겼습니다. 당시에 <이코노미스트>는 "2021년이 지구 역사상 지옥 같은 한 해로 기록될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유럽과 북미, 중국의 기상이변 양상이 작년과 정반대라는 점입니다.

이제 기상이변은 평생 몇 번 정도의 경험이 아닌, 평범한 일상이 된 듯합니다. 그런데 기상이변은 사회안전망과 인프라가 뒤떨어진 지역에 국한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건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선진국도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재앙으로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와 기업, 사회까지 아우르는 생존의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상이변은 인명피해 이상으로 경제에 직격탄을 날립니다. 유럽과 중국은 가뭄으로 올해 상반기에 132억 달러(약 19조원)의 피해가 났습니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난이 심각한 마당에 강수량 부족까지 겹쳐 수력발전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중국은 양쯔강 수위 저하로 전력 생산량이 줄어들며 청두와 충칭의 자동차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전기차 충전 서비스도 제한됐습니다. 쓰촨성은 리튬과 배터리 생산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별 것 아닙니다. 파키스탄의 피해는 300억 달러(약 43조원)를 넘습니다.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분의 1로, 상반기 세계 전체 피해액의 2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유럽과 중국의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유럽은 콩과 옥수수 등 곡물 대란이 우려됩니다. 중국은 쌀 주생산지인 쓰촨성 가뭄으로 세계 쌀 시장이 긴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포항제철소는 지난 태풍에 진흙탕으로 뒤덮이며 모든 생산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런 기후위기의 주범은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가스 물질입니다. 사람들은 자동차나 비행기로 여행을 하든, 근사한 점심을 먹든, 냉난방이 잘 된 방에서 잠을 자든, 모든 활동을 할 때 온실가스 배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금 지구의 온실가스 배출량(이산화탄소환산량)은 약 60기가톤(GT)으로 석유 등 에너지 생산에서 40%, 철강과 시멘트 등 제조에서 20%, 농축산과 식품에서 15%, 자동차 등 운송수단에서 15%, 자연에서 10%가량 발생합니다. 200여 년 전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는 이런 인간의 문명생활로 인해 1°C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지구 온도 상승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인류가 끝장날 것이란 위기 의식이 생기면서 전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각국은 2015년 말 파리기후협약에서 온도 상승을 2°C 이내로 막자며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습니다. 사실 20세기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미국입니다만, 이제 중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의 26%를 차지하며 13%인 미국을 압도합니다. 그런데 정부 차원에서 기후위기 대응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으로, 전기차 산업을 주도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기후위기 최악의 '빌런' 러시아는 지구 온난화로 시베리아 동토가 녹고 북극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석탄과 철로 먹고 사는 호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합니다.

각 국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필연적으로 산업 생태계 변화로 이어집니다. 이런 변화는 재생에너지, 전기차, 농업 등과 관련된 기후기술(climate tech) 투자에서 잘 나타납니다. PwC 분석에 따르면 2020년 하반기부터 1년 동안 총 875억 달러가 투자됐습니다. 2021년 상반기에만 600억 달러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전기차와 물류 등 운송 분야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과거 기후기술 투자는 벤처캐피털(VC)이 선도했습니다. 이젠 주인공들이 다양합니다. 미국 정부와 유럽연합위원회는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투자기업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배터리와 자동차 분야의 기술 투자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돈 냄새에 기민한 월스트리트도 마찬가지입니다. JP모건체이스는 향후 10년 동안 2조5000억 달러 투자를 선언했고,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도 앞다퉈 나서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빠질 수 없습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돌리는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탈탄소를 전략적으로 우선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GM은 2035년까지 112년의 내연기관 역사를 끝내겠다고 합니다. 자선가들도 주인공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미망인인 로렌 파월 잡스는 "인생에서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투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제 기후변화 대응은 더 이상 개념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산업과 시장의 모태이자 사회적 변화의 동인이 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한 인간은 도덕적인 구호보다는 구체적이고 경제적인 의미가 있어야만 움직입니다. 사회적 책임도 중요합니다. 지금 기성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잘 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조부모보다 잘 살았습니다. 미래 세대 역시 지금 세대보다 잘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2021년 독일 대법원은 청년들의 미래 기본권을 보장하라며 정부에게 즉각적인 기후위기 대응조치를 명령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돈룩업'에서 천문학 전문가는 지구로 접근하는 혜성을 발견하고 백악관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지구촌 공멸의 재앙에 대응하기보다는 정치적 프레임에만 골몰합니다. 대중들 역시 소셜미디어와 언론에 정보가 넘쳐나지만, 눈 앞의 종말에는 눈을 감습니다. 위험이 닥치면 대응보다는 모래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처럼 반작용을 보이는 천성 때문입니다. 한국은 세계 9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입니다. 1인당 배출량 기준으로는 6위입니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대전환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내년 이 때쯤 별 일이 없다면 지난 여름은 잊혀질 것입니다.

*필자는 삼일회계법인과 KDB산업은행에서 근무했으며 벤처기업 등을 창업·운영하였습니다. 현재는 사모펀드 운용사 서앤컴퍼니의 공동대표로 있습니다. <슈퍼파워 중국개발은행>과 <괜찮은 결혼>을 번역했고 <디지털 국가전략: 4차산업혁명의 길>을 편역했습니다.

정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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